패션 뷰티

금발의 비너스 1930년대 최고 섹시 스타 마를레네 디트리히

에이제이패션 2023. 6. 9. 21:43

1901년 12월 27일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10대 때 가진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버리고 연기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녀는 1923년 첫 영화 사랑의 비극에 출연한 이후 1930년대와 40년대 몽환적인 섹시함과 독특한 목소리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개성적인 스타일로 가장 매력적인 배우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168cm의 키에 남다른 각선미로도 유명했던 그녀는 죽을 때까지 아름다운 몸매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유복한 어린 시절 이야기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아버지는 기병 장교 출신이었으나 그녀가 어릴 때 죽고 엄마는 같은 직업의 아버지 친구와 재혼하였습니다. 그녀는 사립학교에 다니면서 12살 때 프랑스어와 영어를 마스터했습니다. 또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길 원하여 레슨을 받았지만 십대 후반 때 연극으로 진로를 바꿨습니다. 그리고 데뷔 이후 얼마되지 않아 영화 감독 루돌프 시버와 결혼하여 외동딸 마리아를 낳았습니다. 이 둘은 나중에 헤어지고 1929년 공식적으로 이혼하였습니다. 

 

히틀러의 도움으로 독일에서 스타가 된 그녀

 

 

 

독일에서의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경력은 192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고 1930년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독일 최초의 유성 영화 푸른천사에 캐스팅됩니다. 헐리우드 감독 작품으로 영어 버전인 블루 엔젤도 같은 캐스팅으로 촬영했습니다. 

 

 

영화 주인공 롤라는 나이트 클럽 댄서역으로 섹시한 미모와 세련된 몸짓으로  디트리히에게 최적화된 캐릭터였습니다. 이 영화로 디트리히는 미국에서 최고의 스타가 되었습니다. 영화마다 치명적인 매력의 팜므파탈 연기를 하면서 디트리히는 화면 안팎으로 종종 바지를 입고 남성적인 패션 스타일을 입고 나와 독특한 매력을 더하며 그레타 가르보에 이어 앤드로지너스 룩을 유행시키며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었습니다. 

 

 

그레타 가르보와 교제했던 마를레네 디트리히

 

 

 

어떤 비평가는 그녀가 남자처럼 행동하고 남자처럼 옷을 입고 다니는 것에 대해 성정체성에 관한 의구심을 품기도 했는데요. 엄혹한 시절에 자신이 직접 양성애자임을 밝힌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마를레네 디트리히를 보면 외모가 그레타 가르보와 흡사하고 스타일도 비슷해서 친분이 있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드는데요. 마를레네는 가르보와는 만난 적이 없다고 했지만 1925년 독일에서 둘이 교제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면 그렇지요. 둘이 헤어진 이유는 가르보가 먼저 유명 스타가 되자 디트리히가 그녀를 질투했던 것인지 그녀더러 무식하다고 흉을 본 뒤로 사이가 나빠졌다고 합니다. 

 

딸 마리아 리바의 폭로

 

 

마를레네 디트리히에 관한 실체는 그녀의 유일한 딸 마리아 리바에 의해 밝혀지기도 했는데요. 엄마처럼 예쁘거나 유명하지만 않았지만 엄마를 닮아 장수해서 현재 98세가 되었는데도 살아있습니다. 그녀는 언젠가 엄마 얘기를 하면서 자신을 한번도 안아준 적이 없으며 엄마의 애인인? 유모의 동의하에 자신도 성추행했다는 얘기를 전했는데요. 그냥 허언증이나 노망이 난 것이겠거니하고 넘어가렵니다. 

 

미국 시민 그리고 반 나치주의

 

무엇보다 독일 태생의 디트리히는 독일 나치 정부에 강력히 반대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물론 그녀가 독일에서 최고 배우로 성장한 배후에는 히틀러의 후원이 있었을 겁니다. 히틀러가 그녀를 엄청 좋아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니까요. 그녀가 헐리우드에서 성공한 것도 히틀러 덕분이었고요. 하지만 1930년대 후반 히틀러 정부에서 그녀에게 독일로 돌아와 영화를 찍으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그녀는 거절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의 영화는 독일에서 방영 금지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939년 그녀는 미국 시민이 되었고 2차 세계 대전 동안 연합군을 위한 위문 공연을 다녔습니다. 물론 그녀는 노래 솜씨도 뛰어나서 배후활동이 미진해질 무렵에는 샹송 가수로 활약했습니다.

 

알고보니 성형미인

 

 

보통 서양의 여배우들 특히 고전 배우들은 자연 미인이겠거니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데요. 그레타 가르보처럼 벌어진 치아를 교정하는 가벼운 시술도 있었지만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여러번이나 성형을 한 배우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자신의 얼굴에 만족하지 못하고 화장법과 헤어를 염색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었습니다. 

 

 

 

그레타 가르보가 여성들에게 더 인기가 많았다면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남성팬들이 더 많았는데요. 존 F 케네디 형제의 취향은 한결 같은지 그들과도 염문을 뿌린 걸로 유명합니다. 이들과의 나이차도 상당했는데 말입니다. 

 

 

가수와 말년

 

 

디트리히는 전쟁 후 1950년대까지 활발한 영화 활동을 하였고 배우로 매력이 쇠락할 때 즈음 1950년대 중반에 가수로 실력을 뽐냈습니다. 그리고 1960년에는 독일에서 공연을 하였는데요 이는 전쟁 후 처음 방문하는 거였다고 합니다. 훗날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은 내가 더 이상 그 이름에 걸맞은 고국을 갖지 못했을 때 나를 품어주었지만, 나는 영혼까지 독일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1970년대 중반  디트리히는 파리로 이사해 은둔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1992년 5월 6일 파리의 자택에서 90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녀는 베를린에 있는 어머니 옆에 묻혔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