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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역사

바벨탑을 쌓은 바빌론 도시에 관하여

by 에이제이패션 2023. 3. 28.

바빌론은 신의 문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 초승달 지대의 남동쪽에 위치한 곳으로 인류 최초의 관개농업이 시작된 곳에 위치하였습니다. 이 도시는 현재 시계에 사용되는 60분 체계를 만들었고 잉여 자원을 통해 교역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 속 신의 권위에 도전하여 멸망으로 이끈 죄악의 도시로 유명합니다.

 

 

탐욕과 죄악으로 가득찬 악의 도시 바빌론

 

유대인들에 의해 씌여진 성경은 자기 자라를 멸망시킨 바빌로니아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어 탐욕과 죄악으로 가득한 악의 도시로 묘사되어 악의 상징 도시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바빌론은 역사상 최초로 세계 수도로 영화를 누렸으며 그만큼 화려한 대도시였습니다. 

 

이 도시는 기원전 2000년대 수메르 족과 아카드 족의 여러 도시들이 이전투구를 벌이던 시절 다른 셈족의 일파인 아모리족은 바빌론을 세우고 조용히 발전시켜 메소포타미아의 정치.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후 바빌론 도시국가가 확장된 영토국가 바빌로니아는 활발한 정복활동으로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석권하는 대국이 되었습니다. 이후 위대한 왕들에 의해 왕국의 치세가 지속되면서 바빌론은 역사상 최초로 세계의 수로로 명성을 얻게 됩니다.

 

 

 

 번영의 도시 바빌론의 쇠락

이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시대에는 수사, 페르세폴리스, 엑바타나와 함께 4대 대도시 중 하나로 번영했고 아케메네스 왕조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 3세는 바빌론을 수도로 삼고 바빌론에서 죽습니다. 파르티아가 메소포타미아를 점령한 뒤에는 셀레우케이아 옆에 새로운 도시 크테시폰을 만들었고 이 크테시폰이 사산왕조 시대에도 수도가 되면서 바빌론은 완전히 쇠락하였습니다. 

 

 

 

 7대 불가사의 바벨탑과 바빌론의 공중정원

 

 

 

성경 속 바빌론 도시 사람들은 당시 언어가 같았고 이들은 합심해서 탑을 끝까지 쌓아 하늘에 닿자고 하였지만 이들의 위세에 두려움을 느낀 하나님은 이들의 언어에 혼선을 주어 더는 대화가 통하지 않아 탑 쌓기를 중단하게 됩니다. 이들의 발달한 문명이 자가 발전인지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들은 구워서 만들어 낸 흙벽돌과 아치 기술을 사용하였고 성벽 높이는 14미터, 짧은 쪽 성벽의 길이는 18킬로미터 그리고 긴 쪽은 72킬로미터에 달하는 등의 어마무시하게 넓고 높았다고 합니다.

 

성벽 밖은 강과 연결된 해자에 둘러싸여 있었고 해자를 넘어 도시로 통하는 8개의 성문과 연결된 튼튼한 석조 다리들이 있었습니다. 각각의 성문에는 이름이 붙어 있었고 적들이 혐오하는 문이라는 뜻의 우라쉬, 침입자들이 싫어하는 문이라는 뜻의 자바바, 군인들을 지켜주는 문이라는 뜻의 아다드, 그리고 전쟁의 신이 지키는 문이자 정문인 이슈타르 문이 있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당시에 아스팔트를 깔아 포작한 벽과 길이 존재했고 하수도 등에도 아스팔트를 이용해 물이 새는 것을 막았다고 하는데 고대 문명의 발달이 현대와 별반 차이가 없던 것은 아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바벨탑의 정상에 있는 신전

 

당시 바벨탑의 정상에는 커다란 신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신전 안에는 화려하게 장식한 침상이 있고 황금 탁자가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신상 같은 것은 없었지만 신전에는 여자 한명만 머무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자는 사제직을 맡고 있는 칼데아인으로 칼데아인은 페르시아가 지배하기 이전의 바빌론의 지배 계급으로 천문학과 점성술의 창시자로 최고의 무녀가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칼데아인의 말에 따르면 신이 친히 신전에 와 침상에서 휴식을 취했다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일은 이집트의 테바이에서도 벌여졌습니다. 신전에 무녀처럼 있는 여자와 신은 절대 동침하지는 않고 여비서 같은 역할을 했던 거로 보입니다. 그러다 전달할 신탁이 있으면 전하고 밤에는 신전 안에서 생활을 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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