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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뷰티

1950년대 한국 최초의 패션쇼와 디자이너

by 에이제이패션 2023. 1. 1.

1950년대는 한국 패션이 자생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첫 시대입니다. 대중 사회에서 패션의 유행이란 개념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뭐랄까 대중 패션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나 할까요. 즉, 집단에 의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일련의 인프라가 구축되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1950년대입니다. 

 

 

 

 

 

1950년대 한국 사회적 배경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고 1953년 휴전 협정이 체결되면서 피란 갔던 사람들이 서울 곳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1954년 12월에는 명동에 최경자가 국제 양장사를 개업하고 바로 옆에 최경자 복장 연구소를 개소하면서 한국 최초의 패션 교육 센터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국제 양장사를 중심으로 당시 한국 최고의 여배우들이 단골손님이 되는데요. 대표적으로 최은희와 김지미 등이 자주 이용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당시 유명한 여배우들이 명동 옷가게를 들락거리면서 명동은 유행의 거리로 탄생하게 됩니다.

 

 

 

 

 

 

영화 속 패션이 유행의 중심이 되기 시작

 

 

 

1950년대 중후반 서울 거리는 체크 무늬의 파라솔이 등장했고 여성 사이에선 최초의 전기 파마와 고데기로 헤어를 꾸미는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여성용 수영복이 잡지에 등장하면서 과감한 노출이 시도되었고요. 1956년에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 영화 자유부인이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면서 영화 속 주인공이 입은 벨벳 소재 드레스와 개버딘 소재의 모자 달린 플레어 코트 그리고 점퍼스커트와 부대 자루처럼 통으로 넓게 만든 풍성한 드레스가 크게 유행하게 됩니다. 당시 벨벳 소재는 홍콩 수입품이었기에 정부에서는 벨벳 사용 금지령까지 내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영화 모정에 나온 중국풍 드레스와 오드리 헵번 주연의 로마의 휴일에 나온 플레어 스커트와 짧은 커트 머리 그리고 사브리나 속 맘보바지가 여성들을 사로잡으며 엄청난 유행을 하게 됩니다. 맘보바지는 50년대 중후반 맘보춤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의 문화 아이콘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평양 상인들이 남대문 시장에 자리를 잡다

 

유행의 중심 명동에 이어 남대문 시장은 시장의 토대를 이루게 되는데요. 일본인과 서양인에게 근대식 복식법을 배운 평양 상인들이 전쟁 후 피란 내려와 남대문에 터를 잡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1955년 무렵에는 한국 내 60%가 넘는 의류가 평화시장에서 생산될 정도로 급성장하게 됩니다.

 

1955년 최초의 디자이너 패션쇼가 열림

 

 

1955년은 한국 현대 의복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 알려졌습니다. 최초로 한국에서 디자이너라는 명칭이 시작된 원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956년에는 한국 최초로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의 패션쇼가 열리게 됩니다. 그밖에 1959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한국 대표로 오현주가 참가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오현주는 노라노 디자이너가 만든 한복 스타일 드레스를 입어 아리랑 드레스로 불립니다. 이로 인해 당시 서양 의상과 한복을 절충한 디자인이 대대적으로 유행하게 됩니다. 이처럼 1950년대 전쟁 후에는 유행을 이끄는 시스템과 패션 디자이너의 탄생 그리고 할리우드 스타를 차용한 패션이 붐을 일으키며 활기를 띠게 된 매우 인상적인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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