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철학역사

일종의 토너먼트 게임을 보는 것 같은 창세기 1장

by 에이제이패션 2023. 6. 10.

창세기 1장 21절은 지금도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구절입니다. 모비딕을 쓴 작가 허먼 멜빌이 사실은 바다의 고래를 잡으러 간 것이 아닌 성경 속에 등장하는 거대한 바다 생명체를 찾아 떠난 것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바닷속 생물의 정체

 

 

성경 속의 거대 바다 생명체가 요르문간드인지 이무기인지 지드래곤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바닷속은 인간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미지의 영역임은 분명합니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궁창 아래 궁창은 물아래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해 놓은 것일지도 모르며 그곳에도 인간 세상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땅 위에 사는 인간은 알 수 없지만 창조주는 분명히 땅 위와 물 속 그리고 하늘 위와 물아래 세상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생명과 생명체의 차이

 

 

 

생물과 생명체의 차이는 미묘합니다. 창세기 1장 20절에는 생물이 나오고 21절에는 생명체가 나옵니다. 특히 21절에는 거대한 바다 생물과 그밖의 생물 그리고 생명체를 구분합니다. 그러니까 거대한 바다 생물 이외는 물고기나 새와 비슷한 모든 종류의 생명체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미생물, 곤충 등 숨 쉬는 모든 생명체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창조주가 천지를 창조한 후 식물을 번성하게 한 후 최초로 거대한 바다 생물을 만들고 후에 인간을 만들었다는 게 되지 않으려나요? 

 

또한, 이번 편에는 첫 번째로 오류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그러려니 하면서 창조론에 솔깃한 기분이 들었는데요. 식물을 종자별로 구축시킨 것처럼 동물도 가축과 짐승을 분류해서 대령하였네요. 그런데 어떻게 가축과 짐승을 미리 구분 지었던 것인지 아이러니합니다. 

 

 

 가축과 짐승

 

 

 

그래서 찾아봤더니 가축이란 단어는 1600년대에 처음 사용된 말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 원서에는 다른 의미로 쓰였다는 말이 되는 것 같은데요. 아마도 순해서 길들이기 쉬운 동물과 야생에서 살기 적합한 짐승들의 혈통 구분을 의미한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현대식으로 해석한 esv버전에는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하느라고 livestock란 단어를 쓴 것 같고 원뜻은 동물도 종류대로 땅에 살게 하되 살금살금 기는 것들부터 길들이기 쉬운 것들과 야생에서 살아야 하는 난폭한 것들 구분하지 않고 번식력이 있는 종족은 다 대령한 것으로 해석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동물 세팅

 

그리고 창세기 1장 24절은 동물을 종류에 따라 집합시키고 25절은 종류에 따라 만든 것으로 나옵니다. 이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그동안의 패턴을 보면 항상 창조주는 2분법으로 구분해서 세상을 꾸며왔기 때문입니다. 빛과 어둠, 육지와 바다, 새싹과 초목, 씨와 열매, 물고기와 새, 그러니 동물도 동물로만 뭉뚱그릴 순 없죠. 살살 기는 동물은 아마도 파충류 즉 나중에 등장하는 뱀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요? 어떤 해석들을 보면 동물에도 선악을 구분해서 가축과 짐승으로 구분하고 이것들 중에도 믿음이 실하면 순하게 그렇지 않으면 야생으로 난폭하게 방치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요.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고 동물의 특성, 성질대로 다 나오라고 한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난 것인데 식물 집합 때도 이후 번성을 명해서 잘 자라게 한 것이 일종의 토너먼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여기서 살아봐 번식도 하면서,라고 명했는데 잘 자라면 창조주가 만족하는 것이죠. 동물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일단 어디서 불러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온갖 것들을 다 집합시키고 번식하고 적응하게 명해서 쓰임에 맞게 잘 크고 적응하는 동물들만 살아남게 되는 거죠. 그 과정을 만들었다고 표현한 게 아닐까요? 또한,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보기에 좋았다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이 내용이 재밌으면 구독과 좋아요를 꾹 눌러주셔야 힘이 납니다.

반응형

댓글